작성일 : 15-05-28 16:45
[역경의 열매] 조요셉 (11) 선교사 꿈꾸던 내게 “목회를 하라” 기도 응답이
 글쓴이 : 새일아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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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조요셉 (11) 선교사 꿈꾸던 내게 “목회를 하라” 기도 응답이
‘물댄동산교회’ 창립 후 목회자 공석… 탈북 청년들 “전도사님이 직접 사역을”
입력 2015-05-27 00:10


신대원에 입학하기 전부터 평신도 사역으로 북한선교를 해왔던 나는 횃불트리니트신학대학원대학교에 입학한 후 ‘선교전공’을 공부했다. 선교사는 되어도 목회자가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 방향을 선교전공으로 정한 것이다.

그즈음 나는 출석할 교회를 찾다가 기도 중에 서울 양천구 평화통일교회(현재 새터교회)로 가라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었다. 평화통일교회는 감신대를 졸업한 탈북민 출신 강철호 목사(당시 전도사)가 세운 교회로, 성도의 대부분이 탈북민 출신이었다. 탈북민 형편상 교회 재정이 어려웠고 목회자 사례비를 제대로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2006년 7월 북한선교연구원에 강의하러 온 임헌만 교수(현 백석대 교수)가 강의 말미에 교수 사역보다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교수님이 목회를 하시면 나도 동참하겠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임 교수는 출석교회를 찾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교회를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둘 다 건물을 얻을 돈이 없었다. 두 사람이 저축한 것을 다 모았더니 420만원이 나왔다. 마침 최경환 박사의 소개로 예수전도단 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BEDTS) 분당학교 최인기 간사를 소개받아 분당에 있는 그분의 오피스텔을 빌렸다. 2006년 9월 말 두 부부가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내가 이사야 58장 11∼12절 말씀에 근거하여 ‘물댄동산교회’로 교회 이름을 지었다. 그해 12월 중순 우리는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님의 배려로 하이패밀리 빌딩 지하로 교회를 옮겼다. 아무런 보증금이나 월세도 내지 않고 그곳에서 6개월 동안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2007년 5월 임 교수가 나에게 인천에서 장인이 시무하는 교회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임 교수를 극구 말렸으나 임 교수가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임 교수가 물댄동산교회에서 시무할 수 있는 목회자들을 알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그래서 내가 교회로 데리고 온 탈북민 청년 몇 명에게 이전에 출석했던 교회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박사님이 신학생이면 전도사인데 교회에서 사역하시면 되지 왜 우리보고 돌아가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듣고 보니 말이 되는 얘기였으나 나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목사가 아닌 선교사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서울 청계산 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했다. 기도를 하다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라는 말씀을 응답으로 받았다. 목회자의 길을 이리저리 피하던 나에게 하나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것이다.

2007년 7월 17일 한국예수전도단(YWAM) 설립자 오대원 목사,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상임위원장 이상숙 권사,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정숙 학장, 경찰대 교목 박성만 목사 등 많은 분을 모시고 물댄동산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나는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정리=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