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26 17:02
[역경의 열매] 조요셉 (10) 뜻하지 않은 목사의 길… 버거웠던 신학 공부 - 국민일보
 글쓴이 : 새일아카데…
조회 : 562  
출처: http://m.kmib.co.kr/view.asp?a...9&code=23111513&sid1=mis&sid2=

[역경의 열매] 조요셉 (10) 뜻하지 않은 목사의 길… 버거웠던 신학 공부
박사학위 특별전형으로 신대원 입학… 히브리어 어려워 시험보면 백지 제출
입력 2015-05-26 00:01 수정 2015-05-26 10:04

나는 직장에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라는 별명을 가졌다. 어느 날 경찰청 박모 국장 초청으로 회식을 했다. 박 국장이 폭탄주를 돌리다가 나에게 잔을 주려고 하는데 직장 상사가 “박 국장, 그 사람은 목사야”라고 말했다. 폭탄주를 돌리던 박 국장이 그 말을 듣고 “차마 목사한테 폭탄주를 줄 수 없지”하고 넘어갔다. 박 국장이 회식이 끝난 후 헤어지면서 나에게 “정말 목사입니까”라고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혹 식당에 가면 식당 직원이 나에게 “목사님이죠”라고 묻곤 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처음 온 사람이 나에게 “목사님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한 말을 여기저기서 들을 때마다 나는 ‘혹시 목사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안 좋았다. 성직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데 나처럼 모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목사가 되나 걱정이 앞섰다. 또 목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정치인이 되어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데 목사라니!’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목회자의 길을 가도록 하셨다. 온누리교회에서 탈북민 사역을 하던 하나공동체가 한창 잘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내가 그 교회를 떠나게 하셨다. 그때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그즈음 주위 분들은 나에게 신학공부를 권면했다. 일반대학 교수로 가는 길도 막히고 탈북민 사역도 어렵던 차에 나는 신학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5년 가을 북한연구학교(NKSS) 강의를 하러 미국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만약 미국에 있을 때 누가 나를 ‘목사’라고 부르면 하나님 뜻으로 알고 신학교에 가겠습니다.” 시애틀에서 강의를 마치고 오대원 목사님께 고민을 털어놨다. “신학을 공부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넌지시 물었다. 오 목사님은 나에게 “신학을 배우면 오히려 신앙심이 약해진다”며 반대하셨다. 나는 속으로 ‘할렐루야’라고 외쳤다. 시애틀에서 강의가 끝나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북한중보학교로 강의를 하러 갔다. 강의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형제 두 분이 와서 나에게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니 하나님은 내가 절대로 받을 수 없는 돈 300만원을 강권적으로 받게 하셨다. 신학대학원 입학금이었다. 하나님께서 신학을 하라는 사인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신 것이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왜 접니까?”라고 외쳤으나 하나님은 내 기도에 침묵하셨다.

하나님 뜻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어 간 곳이 횃불트리니트신학대학원대학교(Torch Trinity Graduate University)였다. 2006년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신대원에 온 다른 학생들은 본인이 원해서 왔기 때문에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온 곳이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반대학 강의도 나가고 신대원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특히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수업이었다. 50대 중반인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다 보니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히브리어 쪽지 시험에 몇 번이나 백지를 낸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시험지를 백지를 낸 것은 신대원 다닐 때가 유일했다. 나는 이렇게 원하지 않은 신학 공부를 하게 됐다.

정리=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