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22 14:45
[역경의 열매] 조요셉 (8) 북송·인신매매… 위기의 탈북 동포 위해 기도를
 글쓴이 : 새일아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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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m.kmib.co.kr/view.asp?arcid=0923086949&code=23111513&sid1=mis&sid2

[역경의 열매] 조요셉 (8) 북송·인신매매… 위기의 탈북 동포 위해 기도를
中에 팔려온 北여성 자녀 최대 6만명… 고아원 등서 인간 대접 못 받으며 성장
입력 2015-05-22 00:00

 
1998년 어느 날 경기도 안양 새중앙교회 북한선교회 간사인 탈북민 조철호(가명) 형제가 집으로 찾아와 “제가 큰일을 한 건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가 탈북민 김용화(현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 형제를 일본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97년 겨울 경기도 시흥에 있는 농민교육원에서 용화 형제를 처음 만났다. 그는 북한 함흥 지역에서 철도국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열차 탈선 전복사고가 발생하자 총살당할 위험을 감지하고 88년 탈북을 했다. 그는 북한을 떠나 중국 각지를 떠돌다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로부터 30만원을 받아 쪽배를 산 후 95년 충남 태안군 안면도로 입국했다. 오자마자 한국 경찰서에 자수했는데 법무부에서는 당시 그가 중국공민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탈북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중국동포로 간주해 중국으로 추방하려고 했다. 용화 형제가 중국에 가면 분명 북송될 것이고 북한에서 죽는다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딱했다.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어 간절히 기도해줬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철호 형제에게 일본에 갈 수 있도록 보트를 하나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전남 진도 지역으로 간증집회를 간 철호 형제가 그곳에 있는 한 집사에게 부탁해 300만원을 주고 보트를 샀다. 철호 형제는 용화 형제가 무사히 일본으로 갈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하고 보냈다고 했다. 내가 철호 형제에게 “그 일은 불법이니 경찰서에 가서 자진 신고하라”고 했다.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러 왔다가 자수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철호 형제는 내 말을 듣고 순순히 전남 목포해양경찰서에 가서 자수했고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서 탄원서를 받아 얼마 안 있어 풀려났다.

일본으로 보트를 타고 나간 용화 형제는 일본 나가사키현 오오무라시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보석으로 가석방된 후 2001년 일본 천주교 단체와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재입국 후 자기와 같은 탈북민을 구출하기 위해 탈북난민인권연합을 만들어 6000명이 넘은 탈북민을 중국 등에서 데리고 왔다. 탈북민은 이처럼 한국에 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사연이 많다.

현재 물댄동산교회 교인인 황선미(가명) 자매는 아버지가 일본인, 어머니는 북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지인이 선미 자매를 비롯해 3남매를 중국 고아원에 보냈다. 선미 자매는 형제들과 중국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그곳에는 중국에 팔려온 북한 여성의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선미는 지난해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자기가 있었던 고아원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헌금을 해 선미 자매편으로 보냈다. 선미 자매는 교회에서 준 돈으로 운동화를 사서 중국에 있는 고아원 동생들에게 나눠주니 그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언니 언제 또 오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내년에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으로 팔려온 북한 여성과 중국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무려 2만∼6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조선의 딸들이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왜 돈 몇 푼에 팔려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딸들이 이러한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또 그들의 자녀들이 국적 없는 난민이 되는 것도 너무 안타까운 비극이다.

정리=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